숲에도 에티켓이 있다. 나무가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는 것이다. 진짜 원시림의 일원은 어떤 모양새인지, 어떤 짓은 하고 어떤 짓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한 규칙이다.
예를 들어 바르게 잘 자란 활엽수는 자고로 줄기가 꼿꼿하게 곧고 그 안에는 목질 섬유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뿌리는 균형을 잘 맞추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또 밑으로도 깊게 흙을 파고든다.
어릴때는 줄기에 아주 가느다란 가지들이 많이 붙어있었지만 자라면서 점점 껍질과 목질들이 그 가지들을 뒤덮어 나무의 몸통은 길고 매끈한 기둥의 모습이다. 맨 꼭대기에는 하늘을 향해 팔을 비스듬히 뻗은 튼튼한 가지들이 보기좋은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 잘생긴 나무는 아주 오래 살 수 있다.
침엽수의 경우도 비슷하지만 수관의 가지들이 수평이거나 살짝 아래를 향해도 좋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무들도 은근히 예쁜 것만 따지는 외모 지상주의자들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예로부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외모가 예쁘면 몸도 튼튼하다. 다 자란 나무의 큰 수관은 폭풍과 폭우, 폭설을 견뎌야 한다. 온갖 자연재해의 충격을 한풀 꺽어 약화시킨 다음 줄기를 통해 뿌리로 보내야 한다. 그럼 뿌리가 그 힘을 견디며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막아 낸다. 그러기 위해 뿌리는 땅이나 돌을 꽉 붙들고 있다. 태풍의 힘은 최고 200톤의 기차 무게에 맞먹는 에너지로 나무의 뿌리를 잡아챌 수 있다니 말이다.
나무의 어디든 약한 부위가 있으면 충격이 그곳으로 집중되면서 나무를 뒤흔든다. 최악의 경우 줄기가 부러지고 수관전체가 무너진다. 균형이 잘 잡힌 나무는 어떤 외부의 힘도 신체 곳곳으로 골고루 분산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충격도 쉽게 견디어 낸다.
당연히 이런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는 나무에겐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줄기가 휘면서 가만히 서 있어도 몸에 무리가 간다. 수관의 무거운 하중이 전체 줄기로 골고루 분산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한 부분만 짓누른다. 그래서 꺽이지 않으려고 그 자리에 힘을 주게 되는데, 그 결과가 검은 나이테다. 중심 줄기가 두 개로 나뉜 나무의 경우 상황은 더 불리해진다. 줄기가 특정 높이에서 갈라져서 두 갈래로 계속 자라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 경우 각자 수관을 머리에 인 이 두가지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가랑이진 부위에 매우 심한 하중이 가해진다.
이 부위가 소리굽쇠 모양이나 Ů자 모양일 경우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하지만 V자인 경우, 다시 말해 뾰족한 형대로 두 가지가 올라간 경우는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V자의 제일 아래 부분이 계속해서 갈라지는 것이다. 너무 고통스러운 나무는 더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부위에 두꺼운 결절을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 소용이 없다. 이 부위에서 계속 액체가 흘러나와 박테리아 탓에 검에 변색이 된다. 게다가 물까지 고여 틈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결국 부패가 진행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어느 날 약한 쪽이 부서져 버리고 튼튼한 반쪽만 남는다. 이 반쪽 나무는 그 후로도 몇십년을 더 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노출된 넓은 상처 부위가 아물지 못해 결국 균류가 서서히 내부를 파먹어 들어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