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처럼 여름 한철 사력을 다해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든 다음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을 살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잡초와 같은 삶의 방식엔 큰 장점이 있다.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유전 변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짝짓기나 수정을 할 때 특히 일어나기 쉽다.
쉬지않고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서 적응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쥐는 몇 주 간격을 두고 번식을 하고 파리는 그보다 더 간격이 밭다. 그런 유전 과정에서 유전자가 손상되고, 운이 좋을 경우 특별한 특성이 나타난다. 한마디로 진화라 부른다.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 조건에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도우미이며 각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보증서다. 세대교체 기간이 짧을수록 적응속도는 빨라진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입증된 이런 필요성을 나무는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다. 그냥 하염없이 한곳에 주저앉아 나이 먹으면서 평균 몇백년을 심한 경우 몇천 년을 넘기기도 한다. 물론 최소 5년에 한번씩 번식을 하지만 진짜 유전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한 그루 나무가 수십만 번 자식을 생산하면 무엇하나? 그중 어느 자식 하나 제대로 된 일자리도 못 구한데 말이다.
자기 엄마가 빛이란 빛은 모조리 집어삼키는데 그 밑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기 나무가 제 아무리 천재적으로 새로운 특성을 갖고 태어났다 한들 스스로 꽃을 피워 그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으려면 수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느려도 너무 느리고, 보통은 그때까지 견디지 못한다.
일꾼들이 잘린 지 얼마 안 된 나무 그루터기를 발견했는데 어떤 학자가 그것을 발견하고 표본을 채취하여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그 그루터기는 그곳에서 무려 1만 4000년 전에 자라던 소나무의 것이었다. 더 놀라운건 당시의 기온 변화였다. 불과 30년 안에 기온이 6도까지 떨어졌고 이어 급격한 속도로 다시 상승했다. 향후 100년 동안 코앞까지 닥쳐올 기후 변화를 생각 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이미 1940년대의 혹한, 1970년대의 기록적인 가뭄, 1990년대의 뜨거운 여름을 거쳤던 지난 세기의 기후 변화만도 자연에게는 충분히 가혹했다.
이용 가능한 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내 관리 구역 늙은 너도밤나무들의 예상 수명을 계산해 보았다. 여기 휨멜의 기후가 언젠가 스페인처럼 더워진다 해도 아마 나무의 대부분은 잘 버틸 것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 숲의 사회조직을 망치지 말아야 하며 나무들이 알아서 미기후를 조절할 수 있게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