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오다말다 하더니 아주 약간의 바람만 부는 흐린 날씨가 계속되었다. 나는 장작을 쪼개어 쌓아놓고 나서 오두막 근처의 나무 아래 떨어져 있는 사과를 주웠다. 사과들은 전부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으나 상당 부분을 잘라내어 애플 크리스프를 만들었다.
하는 김에 빵도 구웠는데 그걸로 힘이 나서는 도끼질을 하면서 두 시간을 더 일하였다. 물푸레나무의 묘목이 빽빽하게 웃자란 버려진 들판으로 가서 솎아 주었다. 저 나무들이 자랄 때쯤이면 나는 여기서 벌써 사라져 있겠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 현재’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몇 주 혹은 몇 년후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그리고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
지금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빵굽는 냄새를 맡고 있다. 내 오두막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의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탁자 상판은 소나무고 다리는 벚나무로 되어 있다. 오늘 같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에 안에서 따뜻하게 있을 수 있도록 미국꽃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불을 피웠다.
내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 숲의 경관이 눈을 즐겁게 한다. 새, 다람쥐, 들쥐, 수백만 마리의 곤충과 그 밖에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동물들을 떠올리자 마음이 평온해진다.
사슴, 무스, 눈덧신토끼 들이 나무줄기에서 잎을 뜯어먹고 목도리뇌조는 봉우리들을 먹으며, 나는 이 동물들을 필요할 때 잡아 먹는다. 어떤 문화에서는 나무를 신성하게 섬기는데, 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든지 말든지 간에 인간은 숲의 아이들이다. 소로는 소나무에서 ‘스윙’하고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마치 바람이 불 때 동물이 내는 신음소리와 같다고 했다.
그는 메인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그루터기 위에 서서 인간의 탐욕과 악행을 생각하며 격분하였다. 마치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만이 아니라 나무들 전부 다를 잘라내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소로는 그 시대를 앞서서 내다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더 멀리 내다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고 그저 약간 유용한 것들이 있다. 컴퓨터는 글을 쓸 때 유용하지만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펜으로도 잘 쓸 수 있다. 나는 글을 충분히 빨리 쓸 수 있는데다가 그렇게 급하지도 않다. 핵발전고 역시 유용하지만 이 지역의 환경이 유지될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나지 않는 한 메인에서는 필요없다. 핵 발전소대신에 풍차가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풍차보다는 나무가 더 낫다. 나무는 우리게게 필요하다.
기술자들은 최근 태양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을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나무는 수백만년 동안 이미 그렇게 해오고 있었다. 엽록체라고 불리는 초소형의 빛에너지 배터리가 만들어진 것을 포함하면 수억 년 전부터다.
나무는 자신들의 모습을 최고의 형태로 조립하였다. 커다랗고 다리가 여러개인 구조다. 어떤 나무는 키가 30미터 이상이다. 나무는 공해도 없고 오히려 오염 물질을 줄여준다. 나무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내고 수리하며, 관리도 필요없다.
에너지원으로서 나무가 지니는 이점은 이러한 에너지 공장들을 거의 모든 곳에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들은 도시 속에서 한데 얽혀서 자랄 수 있다. 가파른 언덕에도 심을 수 있다. 범람원에도 심을 수 있고 심지어 사막에도 심을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무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숲과 야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순수주의자들은 숲을 건드리지 말고 놔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생태적으로 행동할 필요도 있다. 숲이 가진 자원을 현명하게 쓰기를 거부하면 수력발전 댐, 송유관 등 그 외 더 파괴적인 시설들을 숲에 들이게 된다.
나는 야생협회회원증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숲이 오염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술을 더 원시적으로 만들자고 청하는 편이다 하지만 댐으로 숲을 물속에 잠기게 하는 것보다는 에너지원으로 숲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